백화점 지하 주차장.
늦은 시간이라 텅 비어 있는 주차장에서 겨우 차를 빼려다, 그만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차의 사이드미러가 옆에 서 있던 검은색 BMW X5 M의 옆면을 거칠게 긁고 말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 차 문이 열리고 덩치가 큰 남자가 표정 없이 다가왔다. 분명히 아저씨 같은 인상인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사과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차의 흠집을 슥 훑어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됐습니다."
나는 그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예상과는 너무 다른 반응이었거든. 그는 피식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다음엔 이런 식으로라도 만나지 맙시다. 나중에 연락해요."
차가운 말투와는 달리 명함에는 고가의 차량이나 골프장 멤버십이 아닌, 'XXX 사설 투자 그룹 대표'라는 예상치 못한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라타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묘한 잔상과 함께 명함만 손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다음에 이런 식으로라도 만나지 맙시다. 나중에 연락해요.